‘조커(Joker)’는 단순한 빌런의 탄생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사회적 소외, 정신 질환, 계층 격차 등 현대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파헤치며, 한 인간이 어떻게 파괴되고 다시 태어나는지를 조명한다. 아서 플렉이라는 평범한 남성이 ‘조커’라는 상징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은 불편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서사를 경험하게 된다. 이번 리뷰에서는 영화의 미장센, 주제의식,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력 등을 심층 분석한다.
웃음 이면의 눈물, 광기 이전의 고독
2019년 개봉한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Joker)’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스핀오프나 액션물로 기대되었던 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사회 드라마이자 인물 심리극이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등장했다. 이 영화는 DC 코믹스의 가장 유명한 악당 조커의 기원을 다루고 있지만, 기존의 영웅-악당 구도에서 벗어나 오롯이 한 인간, 아서 플렉의 내면에 집중한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며, 때로는 불편하고, 또 때로는 깊은 공감마저 자아낸다. 아서 플렉은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삭감되면서 상담과 약물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 이로 인해 그는 점차 일상생활의 경계에서 미끄러져 내려간다. 사회는 그를 ‘문제적 존재’로 낙인찍고, 그는 그 낙인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며 변화해간다. 영화는 아서를 둘러싼 도시 ‘고담’을 매우 어둡고 혼란스럽게 그린다. 쓰레기 수거가 중단되고,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런 고담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아서의 내면을 반영하는 메타포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도시의 풍경은 아서의 정신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이 그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특히 영화는 폭력적 장면보다 ‘불편한 침묵’을 통해 감정을 자극한다. 아서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기침처럼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 계단을 오르며 고개를 떨구고 천천히 움직이는 그의 실루엣 등은 모두 관객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말’보다 ‘몸짓’이 많은 영화는 주인공의 고통을 언어적 설명 없이도 이해하게 만든다. 영화는 단순히 아서를 동정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그는 점점 광기와 폭력성에 빠지며, 그 행위가 옳거나 정당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영화는 ‘왜 그가 그렇게 되었는가’에 집중함으로써, 개인의 타락이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드러낸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범죄자의 이면을 조명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관객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결국 ‘조커’는 웃음이라는 탈을 쓴 비극이다. 그는 웃고 있지만, 그것은 기쁨의 표현이 아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인생이 비극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코미디였다.” 이 대사는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집약한다. 사회는 아서를 외면했고, 결국 그는 웃는 가면 뒤에 울부짖는 얼굴을 가진 채, 조커로 다시 태어난다.
무너지는 인간, 만들어지는 괴물
영화 ‘조커’의 중심은 아서 플렉의 철저한 해체와 재구성이다. 그는 처음에는 지극히 평범하고 심지어 연민을 유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는 사회의 폭력, 무관심, 냉담함에 점차 물들어가고, 마침내 조커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과정은 단지 주인공의 변화가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괴물로 빚어진 인간’의 탄생을 보여주는 사회적 서사이기도 하다. 아서가 처음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지하철에서이다. 자신을 조롱하고 폭행하는 부유층 남성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데, 이 장면은 관객에게 강렬한 혼란을 안긴다. 그의 행동이 명백한 살인이지만, 동시에 그동안 억눌려 있던 분노와 억울함이 폭발하는 해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이후 고담 전역에 시위를 촉발시키며, 조커가 우연히 만들어낸 상징으로 떠오르게 되는 기점이 된다. 이후 아서는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하나씩 알아간다. 어머니의 환각, 토머스 웨인과의 진실, 연인이라 믿었던 이웃 여성과의 관계 모두가 환상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그는 점점 현실과의 경계를 잃는다. 이 파괴의 과정은 단순한 줄거리의 전개가 아니라, 정신적 붕괴의 드라마다. 이로 인해 관객은 그가 악행을 저지르기 전에도 이미 ‘무너진 존재’임을 이해하게 된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이 영화의 중심축이다. 그는 극도로 마른 체형, 불안정한 몸짓, 눈빛의 공허함으로 아서의 심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가 혼자 웃고, 울고, 춤추는 장면은 대사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특히 계단을 내려가며 춤추는 장면은 조커의 탄생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해방감과 광기가 혼재된 최고의 미장센 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는 아서를 영웅으로 만들지도, 악당으로 단죄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 사회가 한 사람을 어떻게 몰락시키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고담시는 현시대 사회의 축소판이다. 공공 시스템은 무너졌고, 부자는 사치 속에 살며, 빈자는 절망과 폭력 속에 살아간다. 아서는 이런 세계에서 ‘괴물’이 되기보다,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기 위해 조커가 된다.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관심을 받게 된 순간, TV 토크쇼에서 마침내 완전히 탈바꿈한다. 이 장면에서 조커는 사회의 위선을 낱낱이 고발하며, 그동안 외면받던 자신의 존재를 ‘폭력’이라는 방식으로 증명한다. “당신들은 그냥 지나쳤다”는 그의 외침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그간 무시당해온 모든 존재들의 절규처럼 들린다. 그리고 이 순간, 아서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다. 그는 체제에 대한 분노와 절망, 그리고 폭력의 상징으로 기능하게 된다.
우리는 조커를 외면할 수 있는가?
‘조커’는 불편한 영화다. 그것은 폭력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왔던 현실을 너무도 정직하게 들추어냈기 때문이다. 아서 플렉이라는 한 남성의 몰락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만든 사회 구조, 무관심, 편견이 쌓여 빚어낸 필연적 결과다. 그래서 관객은 그를 완전히 미워할 수도, 완전히 동정할 수도 없다. 그저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된다. 이 영화의 대단함은 ‘악의 미화’가 아니라, ‘악의 탄생’이라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인간과 사회, 제도의 관계를 재조명한다는 데 있다. 조커는 본질적으로 혼돈의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상징이다. 그는 악당이 아니라, 시스템의 파편이며,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존재다. 감독 토드 필립스는 이 작품을 통해 히어로 장르의 틀을 깨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는 조커라는 캐릭터를 통해 현실과 가장 가까운 비극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했고, 이는 수많은 관객에게 깊은 여운과 충격을 안겼다. 또한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수준을 넘어, 조커라는 이름 자체를 재정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단순한 ‘광기의 영화’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조커’는 경고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밀어내는지, 얼마나 자주 무시하고, 조롱하고, 외면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때로 조커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를 만들지 않았는가?” 조커는 괴물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다. 다만, 아무도 보아주지 않았던 인간. 우리가 그를 무시하고 지나쳤기에, 그는 웃으며 복수를 선언하게 되었다. 조커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를 만든 세계가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아서를 낳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