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 어게인(Begin Again)’은 잃어버린 꿈과 사랑을 다시 찾는 과정을 담은 음악 영화로, 진부하지 않은 감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두 주인공이 음악을 통해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이 영화는, 음악의 위로와 사람 간의 연결을 따뜻하게 담아낸다. 이 리뷰에서는 영화의 메시지, 음악적 연출, 캐릭터 성장에 주목하며 ‘비긴 어게인’이 주는 여운을 살펴본다.
낡은 감정과 도시에서 피어난 새로운 선율
2014년 개봉한 ‘비긴 어게인’은 존 카니 감독의 작품으로, ‘원스(Once)’에 이어 음악과 삶의 교차점을 다시 한 번 성공적으로 담아낸 영화다. 이 작품은 실패와 상실을 경험한 두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겉보기엔 흔한 ‘치유 드라마’ 같지만, 영화가 주는 진정성 있는 감정선과 도시를 무대로 한 생생한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감정의 흐름이 특별한 울림을 전한다. 영화는 두 인물의 인생의 바닥에서 출발한다.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뮤지션인 남자친구와 결별하고 낯선 뉴욕에서 홀로 남는다. 그녀는 우연히 친구가 무대에 올려준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고, 그 자리에서 술에 취해 있던 음반 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이 그녀의 음악을 듣고 감명을 받는다. 댄은 한때 잘나가던 음악 프로듀서였지만 지금은 아내와 딸과도 소원하고, 회사에서도 버림받은 인물이다. 이들이 만난 순간은 단순한 우연 같지만, 서로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다. 댄은 그레타의 소박한 노래에서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느끼고, 그녀에게 앨범 제작을 제안한다. 하지만 둘 다 자본도, 스튜디오도 없기에 이들은 뉴욕 거리 곳곳에서 야외 녹음을 하며 앨범을 만들어간다. 이 장면들은 단순한 음악 녹음을 넘어, 도시의 다양한 풍경과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시네마틱한 장면으로 연출되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뉴욕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또 하나의 캐릭터처럼 영화 속에 살아 있다. 대도시 특유의 고독과 낭만, 소음과 음악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이들은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가며 동시에 자신을 재발견한다. 영화는 이 도시의 공기와 햇살, 밤거리와 골목까지 감각적으로 담아내며, 음악과 공간이 결합된 ‘감성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레타는 자신의 상처를 노래로 치유해 나간다. 특히 영화 중반에 그녀가 부른 ‘Lost Stars’는 그녀의 감정이 응축된 대표 장면이다. 이 노래는 영화 내내 다양한 버전으로 반복되며, 각기 다른 감정의 흐름을 대변한다. 댄 역시 그레타와 함께하며 점차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음악의 가치와 인간적인 교감을 다시 느끼게 된다. ‘비긴 어게인’은 그래서 단순한 음악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음악이라는 ‘말 없는 대화’를 통해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다. 영화는 말보다는 음악으로 감정을 전달하며,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미덕이다.
다시, 처음처럼 — 관계와 음악의 재조율
‘비긴 어게인’의 진짜 매력은 이야기의 큰 전환이 아닌, 섬세한 감정의 흐름과 관계의 변화에 있다. 영화는 인물 간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천천히 따라가며, 관객에게도 함께 걸어가는 감정을 선사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로맨스나 갈등이 아닌, 각자의 삶을 조율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성숙한 여정으로 그려진다. 가장 주목할 관계는 역시 그레타와 댄의 관계다. 이들은 전통적인 남녀 주인공의 러브라인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통해 성장하고, 서로의 삶에 필요한 ‘멘토’이자 ‘거울’처럼 존재한다. 영화는 이 관계를 낭만적인 감정보다는, 음악과 인간적인 신뢰를 매개로 깊어지게 만든다. 이런 설정은 진부한 클리셰에서 벗어나, 오히려 현실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또 다른 중요한 관계는 댄과 그의 딸 바이올렛의 관계 회복이다. 이 둘은 오랜 시간 소원했지만, 아버지가 다시 음악을 하며 열정을 되찾는 모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댄은 딸에게도 음악을 함께 들려주고, 그 속에서 세대 간의 공감과 대화가 이루어진다. 이처럼 영화는 음악이 단순히 배경이 아닌, 인물 간의 관계를 매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설정했다. 그레타 역시 자신을 배신한 전 남자친구 데이브(애덤 리바인)와의 관계에서 복잡한 감정을 겪는다. 데이브는 상업적인 성공을 쫓아 변해버린 인물이며, 그레타는 그의 성공이 기쁘면서도 동시에 씁쓸하다. 이들은 재회하고, 음악을 통해 다시 연결되지만, 영화는 이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방향으로 이끌지 않는다. 오히려 그레타는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고, 더 이상 그의 그림자에 머물지 않기로 한다. 영화의 서사는 느리고 조용하다. 큰 사건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인물들은 음악을 매개로 삶을 되돌아보고, 스스로의 감정과 관계를 재정의한다. 특히 야외 녹음 장면들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닌, 음악을 만드는 과정 그 자체가 치유이며 회복임을 보여준다. 관객은 그 장면들을 통해 ‘소리의 온도’와 ‘공간의 질감’을 함께 느끼게 된다. 음악 또한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OST들은 대중적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감성을 담고 있으며, 각 곡은 장면의 분위기뿐 아니라 인물의 내면까지 전달한다.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Coming Up Roses’, ‘Like a Fool’ 등은 단순히 좋은 노래를 넘어 영화의 감정선 그 자체를 구성한다. 이 모든 요소들은 ‘비긴 어게인’을 단지 음악 영화가 아닌, ‘감성의 풍경화’로 만들어준다. 관객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감상하는 듯한 감정의 흐름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 크지 않은 이야기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여운을 남긴다.
시작은 작고 조용하지만, 가장 솔직한 울림이 있다
‘비긴 어게인’은 ‘다시 시작하는 것’의 아름다움과 용기를 노래하는 영화다. 그것은 거창한 성공이나 대단한 결말을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실패들 속에서, 소소한 깨달음을 통해 삶의 방향을 바꿔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모든 끝이 끝은 아니며, 새로운 시작은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고. 영화는 대단한 갈등이나 드라마틱한 반전을 제공하진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 작품의 진정성을 강화한다. 인생은 대부분 큰 사건보다 작은 순간들이 쌓여 이뤄지는 법이다. ‘비긴 어게인’은 그 순간들에 조명을 비추며, 진심이 담긴 선택과 감정이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음악은 이 영화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인물들이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통로이며, 감정을 가장 순수하게 전달할 수 있는 언어다. 그레타의 노래는 그 어떤 대사보다도 그녀의 상처와 희망을 명확히 드러내며, 댄의 음악 제작 방식은 그의 삶의 태도 변화를 대변한다. 음악이란 ‘이해’보다는 ‘공감’이며, 영화는 이 진리를 한 곡 한 곡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이 영화는 로맨스, 드라마, 음악이라는 요소들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각의 요소가 절제된 방식으로 존재하며, 그 절제가 오히려 더 큰 진실성을 부여한다. 그레타가 데이브의 곡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부르며 정리하는 장면은, 사랑과 이별, 예술과 소유 사이의 균형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이야기’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레타는 거대 기획사와의 계약을 거부하고, 자신이 만든 음악을 온라인에 무료로 배포한다. 이 선택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무엇이 진짜 가치 있는가’에 대한 그녀의 답변이다. 상업적 성공보다 진정성 있는 음악, 타인의 인정보다 자기 확신을 선택한 그녀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비긴 어게인’은 조용하지만 강한 영화다. 큰 소리로 외치지 않지만,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울리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관객은 영화가 끝난 후, 문득 이어폰을 끼고 거리를 걸으며, 자신의 삶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를 얻게 된다. 그게 바로 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Begin Agai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