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2019)’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로, 두 병사가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수행하는 하루를 거의 실시간으로 그려낸다. 샘 멘데스 감독은 원 테이크처럼 보이는 연출과 탁월한 미장센을 통해 관객을 참호와 전장 한가운데로 데려가며 전쟁의 잔혹함과 인간성, 그리고 희망의 끈을 이야기한다. 이 리뷰에서는 영화 ‘1917’이 전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살펴본다.
한 줄의 명령이 만들어낸 생사의 여정
영화 <1917>은 단 하루, 단 두 명의 병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전쟁 서사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두 젊은 병사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전선 최전방에 있는 아군 부대에게 공격을 멈추라는 명령을 전하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이 단순해 보이는 임무는 실은 수천 명의 목숨이 걸린 중대한 임무로, 영화는 그들의 여정을 끊김 없이 이어지는 원테이크 기법으로 그려내어 관객이 마치 함께 걷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영화는 복잡한 설명 없이 곧장 임무 수행으로 시작된다. 카메라는 이들을 따라 참호를 지나고, 시체와 진흙, 무너진 마을, 독일군의 잔혹한 흔적들을 보여주며, 전장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주인공들이 겪는 감정과 위기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며, 전쟁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공포, 무력감, 그리고 연대감 등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성격도 다르고 전쟁에 대한 태도도 다르다. 블레이크는 동생이 있는 부대에 명령을 전해야 하기에 의욕적이고 빠른 결단을 내리지만, 스코필드는 보다 냉소적이며 조심스럽다. 하지만 여정을 거치며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특히 이 영화는 전투 장면이나 폭력의 강도보다는, 전쟁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공허함에 더 집중한다. 멈춰진 마을, 무너진 다리, 불타는 폐허 같은 장면은 대사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속에서 병사들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1917>의 연출은 기술적으로도 극찬받을 만하다.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는 원테이크처럼 느껴지도록 카메라를 설계하여, 관객이 중간에 끊기지 않고 전쟁터를 함께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는 단순한 기교를 넘어, 주인공들이 겪는 심리적 압박을 더 극적으로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결국 이 영화는 단순한 전쟁 영화가 아니다. <1917>은 전쟁이란 거대한 비극 속에서, 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고,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지를 말하는 영화다. 그것은 희생과 용기, 책임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다.
전쟁의 침묵, 인간성의 속삭임
<1917>은 단순히 시각적 충격을 주는 전쟁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남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자, ‘왜 살아남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인 작품이다. 감독 샘 멘데스는 전쟁의 광기와 동시에 그 안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품은 이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특별한 능력이나 전술을 가진 전사가 아니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병사이며, 그들이 겪는 공포와 선택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차원에서 묘사된다. 블레이크의 열정과 희망, 스코필드의 회의감과 조심스러움은 각각의 감정이 아니라, 전쟁을 겪는 모든 인간의 상징이다. 영화는 이들이 만나는 인물들을 통해 전쟁이 인간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아기와 함께 숨어 있는 프랑스 여인, 강물 위로 흘러가는 시체들, 갑자기 폭발하는 지뢰 — 이 모든 장면은 화려한 액션보다도 더 큰 충격을 준다. 특히, 전쟁의 상처를 말없이 보여주는 이 장면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전쟁의 잔혹함’을 체험하게 한다. 또한, 영화는 죽음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블레이크가 죽는 장면은 갑작스럽고, 조용하지만 뼈아프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동생에게 명령을 전해달라고 당부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을 위한 생각을 놓지 않는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전쟁 속에서도 우리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코필드는 이후의 여정을 혼자 이어간다. 그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단단하고, 동시에 더 깊은 슬픔을 안고 있다. 그는 더 이상 냉소적이거나 회의적이지 않다. 그는 자신이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찾았고, 그것은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처음으로 돌아온 듯한 구조다. 스코필드는 나무 아래에 앉아 가족의 사진을 꺼내어 바라본다. 이는 단순한 안도의 장면이 아니라, 이 모든 여정이 단지 한 사람의 살아 있는 기억, 소중한 일상으로 이어졌다는 걸 암시한다. 그 어떤 영웅담보다도, 이 장면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렇듯 <1917>은 전쟁이라는 장르를 빌려, 실은 ‘사람’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서로를 지키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질문이며,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성실하고도 아름다운 응답이다.
모든 전쟁 속에서도, 인간은 인간이어야 한다
<1917>은 전쟁을 그리되, 영웅을 노래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자들의 고요한 투쟁을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용기라고 말한다. 대규모 전투나 화려한 액션이 없더라도, 이 작품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강렬한 전쟁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기에 충분하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의 이야기는 특정한 전쟁이나 나라를 넘어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에 닿는다. ‘내가 이 전쟁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옳은가?’, ‘우리는 이 모든 비극을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단지 전장에서의 병사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질문이기도 하다. 샘 멘데스 감독은 이 영화를 자신의 할아버지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만들었다. 때문에 이 영화는 허구가 아니라, 기억이자 증언이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연출을 넘어, 이 영화는 관객에게 감정적으로도 큰 울림을 준다. 그것은 ‘우리는 이 모든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비롯된 것이며, 동시에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라는 책임감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스코필드가 보여주는 고요한 안도와 회상은, 인간이 끝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킨다. 그것은 누군가의 손, 누군가의 얼굴,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사소한 것들이야말로 삶의 가장 소중한 이유가 된다. 결국 <1917>은 우리에게 말한다. 모든 전쟁의 기록에는 개인의 이야기가 있고, 그 개인의 이야기야말로 잊혀지지 말아야 할 진실이라고. 우리는 그 진실을 기억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인간’이 된다는 것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