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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스: 신화와 우주의 경계를 넘는 이야기

by solderingboy1 2025. 7. 24.

‘이터널스’는 MCU의 세계관을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시키며, 신화적 존재들의 고뇌와 선택을 그린 독특한 슈퍼히어로 영화다. 인간을 지켜온 불멸의 존재들이 결국 인간성을 되묻는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차원의 질문이 펼쳐진다.

영화포스터(출처: https://www.themoviedb.org)

신이지만 인간보다 인간적인 존재들

2021년 개봉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이터널스(Eternals)>는 기존 마블 영화들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가진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클로이 자오 감독은 신화적 요소와 철학적 사유를 결합시켜, 슈퍼히어로 장르의 경계를 넘는 독창적인 세계를 펼쳐 보였다.

이터널스는 수천 년간 인류를 지켜온 불멸의 존재들이다. 그들은 셀레스티얼의 명을 받아 인간들을 위협하는 괴수 ‘데비안츠’와 싸우며 문명의 발전을 지켜본다. 그러나 타노스의 ‘스냅’ 이후 인류의 절반이 사라졌다가 복귀한 사건을 계기로, 이터널스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임무, 그리고 자유 의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우주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을 도구로 삼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기존 마블 히어로들이 주로 개인의 트라우마, 복수, 책임감 등의 인간적인 갈등에 집중했다면, 이터널스는 인간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는 이들이 오히려 더 인간적인 고민을 한다는 아이러니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캐릭터 간의 이념 충돌, 시간의 무게, 신과 인간 사이의 존재론적 긴장감 등 이터널스는 한 편의 우주 신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글에서는 영화 <이터널스>가 기존 마블 영화들과 어떻게 다른 길을 걷고 있는지, 그 의미와 한계를 중심으로 깊이 있게 탐구해본다.

 

기억, 시간, 선택 – 신화적 영웅의 내면

이터널스는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10명의 인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고대부터 인간 문명의 발전을 관찰하고 간접적으로 이끌어왔다. 이들이 각 시대 속에서 인간과 맺은 감정적 연결은, 단순한 히어로적 ‘구원’이 아닌,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서시(세르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인간과의 교감이 깊다. 그녀는 영화의 중심 인물로서 ‘지시받은 일’과 ‘옳다고 느끼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로 성장한다. 이카리스는 오히려 전통적 영웅의 이미지에 가깝지만, 결국 사명과 감정 사이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드루이그는 인간의 정신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이를 통해 인간의 폭력을 멈추고 싶어한다. 그의 존재는 ‘자유의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킹고는 신화를 즐기며 살아가는 관찰자로 남고, 파스토스는 기술의 힘과 그것이 불러온 파괴에 대한 책임으로 고통받는다. 이처럼 각 이터널은 고유한 철학적 고민을 품고 있으며, 단순한 ‘슈퍼 능력자’로 묘사되지 않는다.

영화 중반 이후 밝혀지는 ‘지구의 셀레스티얼 탄생’이라는 충격적인 진실은 영화의 방향성을 완전히 전환시킨다. 지금까지 인류를 보호한다고 믿었던 이들의 임무가, 사실은 지구를 파괴하기 위한 전초 단계였다는 사실은 기존의 히어로 윤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전개다.

여기서 <이터널스>는 ‘신적 존재조차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윤리적 선택 앞에서는 인간보다 더 복잡한 내면을 지닐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결국 서시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 셀레스티얼의 탄생을 막는 결정을 내리고, 이는 ‘주어진 운명보다 스스로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영화의 핵심 가치로 귀결된다.

연출 면에서도 이 작품은 마블답지 않은 묵직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풍경 묘사, 명상적인 화면 구성이 특징이다. 자연광을 활용한 촬영과 조용한 인물 간 대화는 ‘우주적 이야기’를 마치 시처럼 풀어낸다.

 

히어로의 정의, 다시 쓰다

<이터널스>는 전통적인 슈퍼히어로 서사에서 벗어난다. 이 영화의 히어로는 악당과 싸워 세상을 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고민하고, 자신이 믿는 바를 따르기 위해 체제를 거스르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전통적인 마블 팬들에게는 낯설고, 철학적 질문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깊은 만족감을 준다. 주제의식은 명확하지만, 모든 인물에게 감정 이입하기엔 러닝타임이 다소 분산되고, 장대한 서사에 비해 정서적 여운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터널스>가 마블이 새로운 이야기 구조와 세계관 확장을 시도하는 전환점이었다는 사실이다. MCU는 히어로를 더 이상 ‘강한 존재’로만 그리지 않고, ‘선택하고 고뇌하는 존재’로 확장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히어로에게 바라는 이미지가 달라졌음을 의미하며, 대중문화의 흐름 또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터널스는 또한 ‘기억’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 존재와 시간을 사유하게 만든다. 수천 년의 시간을 지내온 존재들이 인간을 보며 감동하고, 그들과 함께 하며 변화한다는 설정은, 인간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결국 이터널스는 슈퍼히어로 장르를 빌려 쓴 철학적 우화다. 이 영화는 화려함보다는 사유를, 속도보다는 깊이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는 이후 마블이 다양한 장르와 가치에 도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시금석이 되었다.

비록 모든 관객에게 완벽하게 다가가진 못했지만, <이터널스>는 분명 ‘히어로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던진 영화였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