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레디터리’는 전형적인 점프 스케어가 아닌, 심리적 고통과 가정 붕괴를 바탕으로 불안을 극대화시킨 새로운 형태의 공포 영화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로 현대 공포 영화의 기준을 새롭게 세웠다.
고요한 불안이 서서히 삶을 삼킬 때
공포 영화는 대부분 관객을 놀라게 하거나 짧은 긴장감을 주는 장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18년 아리 애스터 감독이 내놓은 데뷔작 <헤레디터리(Hereditary)>는 그 공식을 완전히 뒤엎었다. 이 영화는 겉으로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가족이라는 가장 내밀한 공간이 어떻게 붕괴하고 파괴되는지를 집요하게 조명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애니는 예술가이며 어머니와의 관계가 결코 원만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마음속엔 혼란과 분노, 두려움이 교차한다. 이후 그녀의 가족에게 하나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그 중심엔 ‘유전(Hereditary)’이라는 제목 그대로 내려오는 어두운 피의 유산이 존재한다.
<헤레디터리>는 눈에 보이는 귀신이나 괴물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의 심리적 균열과 억눌려왔던 감정들이 폭발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진짜 공포를 선사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조여오는 듯한 불안감,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은 마치 현실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악몽 같다.
이번 리뷰에서는 이 영화가 왜 단순한 공포를 넘어 ‘현대 심리 공포 영화의 새 기준’이라 불리는지, 그리고 무엇이 관객의 마음을 이토록 오래도록 무겁게 짓누르게 만드는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가족이라는 가장 사적인 지옥
<헤레디터리>의 중심에는 '애니'라는 인물이 있다. 그녀는 작고 정교한 미니어처를 만드는 예술가로, 이 작업은 그녀가 감정을 직면하지 않고 외부로 투영하는 방식을 상징한다. 그녀의 세계는 마치 완벽하게 설계된 인형 집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는 점점 균열이 간다.
영화는 ‘유산’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피지컬한 차원이 아닌, 정신적·영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애니의 어머니는 오컬트 집단과 관련이 있었고, 그로 인해 가족은 알 수 없는 저주 같은 운명을 물려받는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오컬트 요소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철저하게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선을 따라 전개된다.
특히 자녀들과의 관계는 이 영화의 핵심이다. 아들과의 끔찍한 사건 이후 벌어지는 죄책감, 분노, 무기력은 공포보다 더 무서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이 장면에서 토니 콜렛의 연기는 가히 압도적이다. 분노와 절망, 후회의 감정이 목소리, 표정, 호흡 하나하나에서 터져나오며, 관객은 그녀의 고통을 실감하게 된다.
<헤레디터리>가 기존 공포 영화와 차별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감정선이다. 단순한 깜짝 놀람이 아닌, 심리적 압박이 축적되면서 자연스럽게 ‘공포’로 이어지는 구조는 영화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유지된다.
또한, 영화는 시각적 상징도 탁월하게 활용한다. 미니어처, 벌레, 불빛, 그리고 집 구조 자체가 인물의 심리를 반영하는 구조로 배치된다. 미술과 조명, 음향의 디테일은 무의식적 불안을 증폭시키며, 관객의 심리마저 억누르는 듯한 기묘한 체험을 제공한다.
결말에 이르러 모든 퍼즐이 맞춰질 때쯤, 관객은 단순한 사건의 해결이 아닌 ‘운명’이라는 감각에 휩싸인다. 피할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도 이 집의 일원이 될 수 있다
<헤레디터리>는 관객에게 말한다. "공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당신의 일상, 당신의 가족 안에 있다." 이 말은 단지 위협적인 요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감정과 상처,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무형의 고통에 대한 메시지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단 한 편으로 공포 영화계의 판도를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레디터리>는 단순한 유령 이야기나 오컬트의 나열이 아닌,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영화의 무서움은 끝나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불 꺼진 방, 가족과의 대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는 억눌린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헤레디터리>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 가족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자신이 이어받은 것들에 대한 근원적 탐색으로 이어진다.
진짜 무서운 건 ‘그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아주 조용하고, 아주 치명적으로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