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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리스 (Loveless): 차가운 무관심 속에 사라진 소년

by solderingboy1 2025. 8. 1.

‘러브리스’는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가 그려낸 차가운 현대 가족의 초상이다. 실종된 소년을 찾는 이야기를 통해, 부모의 무관심, 사회의 냉담함, 그리고 사랑이 사라진 시대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감정의 잔혹극이다.

영화포스터(출처: https://www.themoviedb.org)

사랑이 사라진 시대의 실종 사건

<러브리스(Loveless)>는 2017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가 연출한 작품이다. 감독은 <엘레나>, <리바이어던> 등을 통해 인간과 사회, 권력과 윤리의 갈등을 섬세하고도 냉정하게 포착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러브리스>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차갑고 쓸쓸한 가족의 풍경을 그려낸다.

영화는 한 소년 ‘알료샤’의 실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의 부모 제냐와 보리스는 이혼을 앞두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혐오와 냉소로 가득하다. 아이는 그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잃고 외면당한 채 살아가며, 결국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이의 실종 이후에도 부모는 처음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서로를 비난하고 새로운 연인과의 관계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단순한 실종 미스터리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의 부재’가 개인, 가족, 사회 전체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를 잔인하리만치 섬세하게 묘사한다.

영화는 차가운 카메라 앵글과 감정이 배제된 배우들의 연기, 쓸쓸한 러시아의 겨울 풍경을 통해 ‘무관심’이라는 공기를 형상화한다. 아이의 실종은 곧 사랑의 실종, 감정의 실종, 관계의 실종을 상징하며, 관객은 이 비극의 중심에 서서 불편하고 차가운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번 리뷰에서는 <러브리스>가 단순한 드라마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 그리고 이 시대에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깊이 있게 분석해보고자 한다.

 

무관심의 구조, 사랑이 없는 사람들

<러브리스>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차가운 시선이다. 영화는 사건을 감정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오히려 철저하게 관찰자의 태도로 일관한다. 관객은 알료샤가 사라지는 장면조차 목격하지 못한 채, 그저 텅 빈 방과 닫힌 창문을 바라본다.

부모인 제냐와 보리스는 겉보기에 일반적인 중산층 부부지만, 그들의 내면은 텅 비어 있다. 제냐는 외모와 소셜미디어에 집착하고, 보리스는 보수적인 종교 회사에 근무하며 이혼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간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애정은커녕 기본적인 존중조차 없는 상태에서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책임을 외면한다.

알료샤는 그들의 갈등 속에서 외면받는 존재다. 그는 부모가 싸우는 장면을 벽 뒤에서 몰래 듣고, 울음을 삼킨 채 혼자 학교에 다닌다. 그런 그가 사라졌을 때, 부모는 처음엔 아이가 단순히 친구 집에 있을 거라며 무관심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실종이 단순한 ‘일탈’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후 경찰과 자원봉사 수색대가 투입되지만,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시스템의 무관심’을 보여준다. 관료적인 대응, 비효율적인 조직, 형식적인 탐문… 결국 아이는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문제는 누구도 진심으로 그 아이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의 분위기는 러시아의 회색빛 도시 풍경과 어우러지며 절망을 더한다. 눈이 내린 들판, 버려진 건물, 침묵 속에 울리는 공허한 음악… 이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수렴된다. “사랑이 없는 곳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결국 <러브리스>는 ‘한 아이의 실종’이라는 이야기를 빌려, 감정의 단절이 어떻게 가족을 무너뜨리고, 나아가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에는 눈물도, 분노도 없다. 대신 모든 감정이 마비된 세계 속에서 인간의 ‘비극적 침묵’만이 남아 있다.

 

사라진 것은 아이가 아닌, 우리 안의 감정

<러브리스>는 어떤 의미에서 가장 잔인한 영화다. 폭력이나 살인이 아니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무관심’이 가장 큰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아이가 실종된 이후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부모가 새로운 삶에 적응한 듯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텅 빈 감정 속에 존재하는 모습을 볼 때다. 그들은 더 이상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과거를 회피하며 또 다른 무관심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냐는 러닝머신 위를 걷는다. 화면에는 러시아 뉴스가 흐르고, 바깥 풍경은 회색빛이다. 그녀는 계속 앞으로 걷지만, 실은 아무 방향도 없는 그 자리에서 맴돌 뿐이다. 그것은 곧 현대인의 초상이며, 사랑 없이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러브리스>는 어떤 위로도,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강렬하다. 우리는 그 불편함 속에서, 지금 우리의 관계를 돌아보고,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야만 한다.

사라진 것은 단지 한 아이가 아니다. 그 아이를 외면한 어른들의 감정, 공감, 책임… 그리고 ‘사랑’이다.

진정한 실종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의 부재다. 그리고 그 부재는 너무 조용하게, 그러나 치명적으로 우리를 파괴한다.